☆이식의 추억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나의 벗 BB를 소개해야 할 것이다.

BB는 고등학교때 이민을 온 쿤밍출신 1.5세대로 딴짓과 망상에 있어서만큼은 나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죽이 잘 맞았다. 시험공부는 지긋지긋했지만 소화기계만큼은 둘 다 한창 빠져있을 때였다. 고흐와 고갱이 쟈포니즘을 논하고 랭보와 베를렌이 아방가르드를 노래한 것처럼 우린 틈만 나면 트럭소리에도 덜덜 떨리는 구식 목조아파트에서 차를 홀짝이며 Lower G.I tract 생산물에 관한 고찰-그러니까 주로 혈변과 설사, 지방변과 변비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제 그제 한 얘기를 또 해도 늘 재미있었다.

어느날 그녀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사무실 동료 죤이 독일에 가서 디스크 수술을 받고 온 뒤 설사가 너무 잦아서 병원에 가보니 묘한 병균에 감염이 되어있었다는 게다. 방치하면 대장과민증후군으로 고생하다 탈수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균이지만 식습관이 비슷한 가족의 똥을 대장에 이식받아 장내 유익균이 융모에 심시티를 형성하면 어렵지 않게 나을 수 있는 병이기도 했다.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시는  똥이식이란 새로운 컨셉은 우리를 사로잡았다. BB는 죤이 약을 먹는 모습, 죤의 장 상태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궁금한 것은 곧바로 질문해가며 정보를 채집한 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지고 아파트에 놀러와 밤이 이슥하도록 토론을 했다.

"Because it's messy." 어째서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똥이식을 안하고 약물요법을 쓰느냐고 묻자 죤이 대답했다. 설사의 횟수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많아지면 그때가서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정보채집의 기간이 길어지자 죤과 BB의 우호관계가 꽤 돈독해졌다. 죤의 생일이 다가오자 BB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특별한 생일선물을 챙겨주고싶다 했다. 심심하면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입던 나에게 남는 텍스타일물감이 많았다. 갭에 간 BB는 비둘기색 라운드넥 티셔츠를 골랐다.   

그날 오후 아파트에 놀러온 BB는 가방에서 파일을 하나 꺼냈다. 식도에서 대장 끝까지 그려진 일러스트와 구글과 책에서 수집한 Clostridium difficile에 관한 자료였다. c-diff 병균의 캐릭터를 로고로 만들어 왼쪽 가슴에 소박하게 그려넣자는 나의 제안을 거절한 BB는 앞판에 소화기계의 어여쁜 실제사이즈 실루엣, 그리고 c-diff에 감염되어 붉게 타는 대장을 그렸다. 염증을 상징하는 붉은 색은 빨간 안료가 없어서 반짝이는 분홍색 물감으로 표현했다. 등판에는 단계별 감염증상과 해결책을 깨알같이 붓으로 써내려갔다. 붓글씨 민족의 후손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때려쳤을 것이다. BB는 밤이슬이 맺힐때쯤 구슬같은 땀을 닦으며 만족스럽게 붓을 내려놓았다. 

얼마못가 BB가 죤과 소원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설사맨 십원생퀴를 주려고 눈알빠지게 글씨를 쓴 걸 생각하면 억울하다고, 줬던 티셔츠를 당장 빼앗아오고 싶다고 그랬다.

죤...지금쯤 다 나았을까.

by 지윤 | 2009/05/10 15:37 | Berkeley Days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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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5/10 15: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윤 at 2009/05/10 15:58
내가 안그랬어염 걔가 그랬어염*^0^*
Commented by  sG  at 2009/05/10 16:24
☆ 얘기는 나이가 몇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 항상 웃기다는
어렸을 때 그냥 누가 제 눈 똑바로 쳐다보고 ♨이라고만 해도 자지러졌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차 마시면서 재미로 ♠얘기는 쫌

...
Commented by 지윤 at 2009/05/11 00:06
전 지금도 누가 제 눈 똑바로 쳐다보고 ♧이라고 하면 웃겨죽을것 같을 것 같을 듯 하다능.....올리고당 선전에 프락토 라고 쓰여진것만 봐도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Commented at 2009/05/10 18: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윤 at 2009/05/11 00:07
들어본중에 제일 참신한 이식이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알겠어요 at 2009/05/11 14:42
뭐랄까 절로 무릎이 꿇려지는 에피소드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지윤 at 2009/05/12 20:25
지금 생각해보면 안말린게 후회되기도 하고 잘했다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합니다*^^*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9/05/12 00:11
.....그 티셔츠, 언제 정발되나염?
Commented by 지윤 at 2009/05/12 20:27
오오오 그러고 보니 판화로 찍어서 환우회 같은데 단체납품을 하면........................
........짱돌이 날라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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